고등학교 때 약물사범으로 오해받을뻔한 일


학창시절 나는 선생님들의 많은 관심을 받는 학생이었다.

품행이 방정하다거나 학업성적이 우수하다는 이유는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학창시절 나는 평범한 편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만 되면 미친놈처럼 돌아다닌다거나 학생이 해서는 안될

나쁜짓을 저지른다거나 하는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학교에서 크고작은 사고가 나면

그자리엔 내가 있었다. 친구들과 뛰어놀다 유리나 TV를 깨먹는 다거나 장난치다 누가 다치거나

하면 항상 그곳엔 내가 있었다.

덕분에 나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요주의 인물로 통하게 되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그때도 나는 얼마 전 친 사고로 한동안 자중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일주일 전이었다. 그 당시 우리학교에서 한창 유행하던 놀이는 말뚝박기였다. 항상 쉬는시간만

되면 교실 뒷편에서 말뚝박기를 하며 놀았다. 고등학교때 말뚝박기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말뚝박기 자체가 상당히 익스트림한 스포츠이기 때문에 항상 부상의 위험이 존재했다.

우리반은 특히 더했다.

다른반 같은 경우는 여학우들도 같이 껴서 하하호호 웃으며 즐기는 여흥정도의 놀이였다면

우리반은 아녀자의 몸으로는 견딜수 없을 정도의 격렬함을 동반했다. 거의 전쟁이었다.

세판을 내리 지고 드디어 가위바위보에서 이겼다. 얼굴엔 땀이 흥건했고 등 전체에 찌릿찌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친구들의 얼굴을 보니 이미 분노가 충만한 표정들이었다.

그렇게 얼굴에 살기를 띈채 하나 둘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척추를 접어놓겠다는 의지가 보이는

점프였다. 한명씩 착지 할 때마다 교실엔 곡소리가 울려퍼졌고 마침내 마지막 주자인 내 순서가

왔다. 이를 꽉 물고 넌 최소 자비에르교수 라고 되뇌이며 뛰어올랐을 때였다.

 

갑자기 앞문으로 선생님이 들어왔고 놀란 친구가 몸을 일으켰다. 이미 멈출수가 없었던 나는

그대로 친구의 등짝과 충돌하고 말았다. 그 반동으로 튕겨져나간 친구는 그대로 사물함에 얼굴을

쳐박고 말았다. 고개를 든 친구의 얼굴에선 쌍코피가 질질 흐르고 있었다. 그 사건 이후 선생님에게

엄청나게 깨진 후 나는 한동안 얌전한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시간이 지나자

또 슬슬 몸이 근질근질해 지기 시작했다.

 

쉬는시간에 자주 어울리던 친구 하나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내일 모레 야자가 끝난 후

학교에서 고기를 구워먹자는 것이었다. 뜬금 없는 이야기였지만 귀가 솔깃해졌다. 재밌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마땅히 고기를 구워먹을 장소가 없다는 것이었다. 교실에선 당연히 냄새가 배니

먹을 수 없었고 그렇다고 운동장에서 먹자니 수위아저씨와 소사아저씨에게 걸릴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화이트데이나 유작등의 간접경험을 통해 우리들은 수위아저씨에 대한 막연한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다.

어디서 먹을거냐는 내 질문에 친구는 옥상에서 먹으면 된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옥상은 평소에 잠겨있었고 옥상 키는 소사아저씨가 가지고 있었다. 소사아저씨 역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나이를 가늠할 순 없지만 탄탄한 몸에 구릿빛피부를 가진 소사아저씨는 우리들 사이에서 새미소사로 불릴 정도로

강렬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그런 아저씨를 상대로 옥상키를 손에 넣기란 쉬운일이 아닐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친구는 여유만만이었다. 항상 학교 소각장 창고에 옥상키를 보관한다는걸 파악해 뒀다며 밤에

몰래 가져오면 된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치밀함에 난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 노력을 공부에 쏟았다면 우리들 중

제일 훌륭한 사람이 되었을텐데..

우리의 계획은 이랬다. 일단 각자 지정한 준비물들을 챙겨오고 야자가 시작하기전 고기를 사와서 야자가 끝난 후

학교 안에 숨어있다 몰래 옥상으로 올라가자는 계획이었다.

 

마침내 그날이 왔다. 0교시가 끝나고 오늘 밤에 대한 기대감으로 친구들과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을 때였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교실문을 열고 상기된 얼굴의 학생주임 선생님이 등장한 것이었다. 학교마다 한명씩

있는 미친개의 타이틀을 달고있는 선생님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우리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교탁앞에 서서 우리들에게 각자 가방을 책상 위로 올리라고 말했다. 가끔씩 불시에 하는

소지품 검사였다. 누군가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또 단체로 적발된 모양이었다. 눈 앞이 캄캄해졌다.

선생님은 앞자리부터 가방을 열어 소지품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난 제일 앞자리였다.

내 가방을 뒤지던 선생님의 얼굴이 굳어졌다. 굳어진 표정의 선생님이 꺼낸 물건은 부탄가스였다.

선생님의 표정에서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선생님은 그동안의 내 기행에 대한 원초적인 원인을 발견한 것 처럼 손에든 부탄가스를 바라보았다.

생긴대로 논다더니 그럼 그렇지 역시 가스정도는 해줘야 견적이 나오는 몽타주지. 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게 뭐냐는 선생님의 말에 나는 당황했다. 졸지에 청소년 약물사범이 되어버린 내가 패닉상태에서 내뱉은 말은

'아... 그게 너무 추워서..' 였다.

 

이제 확신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는 선생님에게 뒤늦게 모든 걸 털어놓았지만 선생님은 쉽사리  믿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 가방에서 후라이팬과 쌈장이 나오고 나서야 모든 오해가 풀어졌다.

 

결국 그날 우리의 계획은 모두 무산되었고 덤으로 일주일간 교내환경미화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우리 학교에선 담배를 피우다 걸리면 담배를 피우지 맙시다 라고 써진 미스코리아 띠를 매고 청소를 시켰는데

나와 내친구들을 위해 학생주임 선생님은 교내취사금지 라고 써진 새로운 띠를 손수 만들어 주셨다.

 

내 생애 가장 치욕스러운 일주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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