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사리 입을 뗀 모예스 감독은 “솔직히 24부리그 동네 축구팀 감독 바꿀 때도 이따위 엉터리로는 안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가 좀더 성숙하고 선진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라는 말을 보탰다.
에라이, 구단 수준이 이 정도 밖에…”
기습경질 다섯달 만에 첫 장시간 진심토로
‘그날’ 이후 두 달 넘게 지났음에도, 감정을 완전히 추스르진 못한 듯 보였다. 아픈 기억을 되새기는 대목에선 유독 굵직한 스코틀랜드 사투리 억양이 복잡한 속내를 대변하는 듯했다. 마주한 인물은 데이빗 모예스(51). 2013년 7월부터 2014년 4월22일까지 그의 이름 앞엔 The Chosen One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자리에서 전격 경질된 그에겐 다른 프로팀 몇 곳이 영입 의사를 전해오기도 했다. 모예스 감독은 언론과의 만남을 무척이나 불편해했다. 어렵사리 성사된 약속 당일에도 거듭 사양의 뜻을 간곡히 밝히기도 했다. 때마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리그 개막 이후 부진 문제로 진통을 앓고 있어서 오해를 사고 싶지 않다는 뜻이란다. 하지만 마주앉은 뒤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는 ‘그날’의 상처는 물론이고 자신만의 축구 철학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의 미래에 대한 고언 등 이야기보따리를 거침없이 풀어냈다.
날 자를 무기 있다 말한 것, 그게 젤 섭섭해”
-무엇보다 그날 상황이 궁금하다.
“차기시즌 선수 영입과 관련해 의논하나 보다 싶었다. 그런데…”
-무슨 얘기가 오갔나?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다음 시즌에도 챔피언스리그에 진출할 가능성이 10%도 안 된다는 분석자료를 갖고 있다고 했다. 코칭스태프 사이나 코치-선수 사이가 안 좋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면서. 구단에선 (나를 자를) 무기를 들고 있다더라. 무기란 소리에 어이없었다.”
-어떤 기분이었나?
“한마디로 느닷없었지. 솔직히 24부리그 축구팀 감독 바꿀 때도 이따위 엉터리로는 안 한다. 아무리 틀어졌더라도 모양새 갖춰 식당 가서 수고했다고 박수라도 치고 끝나지. 에라이. 내가 반발할 움직임을 보이자 구단에서 팀 분위기가 나빴느니 하면서 선수치듯 음해하는 자료를 언론에 막 뿌렸잖아.그 뒤 주변 사람들 만났더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수준이 그거밖에 안 되냐고 한마디씩 하더라.”
-구단과는 계속 갈등 있었나?
“그렇게 보지 마라. 그동안 오직 강한 팀 만들자는 목표로 이야기도 많이 나누고 정말 잘 지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역사를 이어자가자는 같은 배 탄 사람들 아닌가. 그런데 구단에게 정말 섭섭한 게 하나 있어. 내가 아쉬운 건 설사 감독과 코칭스태프가 모르고 있거나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치자. 그러면 자기네들이 먼저 도움도 주고 해결하려 나설 수도 있는 거 아닌가. 팀에 문제가 있다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못할 까닭이 뭐 있나. 그런 걸 안 했다면 오히려 그쪽이 직무유기다. 그런데 무기 들고 있다는 말이나 하는 건 애초부터 생각이 다른 데 있는 사람들이야. 그게 제일 섭섭해. 내가 그동안 단 한 가지 빼고는 구단과 의견이 달랐던 부분도 없었다.”
- 라이언 긱스가 종이를 탁 집어던지면서…
모예스 감독이 말하는 ‘한 가지’란 팀선수 선발과 관련해 모예스가 감독과 선수단 사이에 한차례 갈등이 빚어진 걸 말한다. 모예스 감독은 지난 3월 올림피아코스와의 챔피언스리그 16강 2차전을 앞두고 선수 명단을 발표하면서 선수들로부터 ‘외압’이 있었음을 밝혀 논란이 된 바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나?
“히스토리가 있다. 내가 만든 2차전 전술 내용을 보여주니 당시 라이언 긱스가 종이를 탁 집어던지면서 소리를 지르더라구. 옆에 코치들이 다 보고 있는데. 아무리 팀의 프랜차이즈 최고 선수라지만 정말 경우에 없는 일이다. 이 양반은 분명히 선수 영입에도 간여할 거 같더라. 내 딴에는 후배라고 맨날 깔아뭉개고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경고 메시지 준 거였을 뿐이다. 그 양반하고 철천지원수 진 것도 아니고.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아무래도 팬들 사이에선 지난 시즌 끝없는 부진과 각종 패배 기록 충격이 크다. 모예스 감독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진 계기가 된 건 사실 아닌가?
“당시엔 팀 상황이 최악이었다. 부상 선수가 줄줄이 나왔다. 마타도 팀에 합류한지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고. 코칭스태프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질 때 지더라도 방향은 길게 보고 그대로 가져가자고 했다. 결국은 리빌딩이 중요한 거 아닌가. 한두 게임 이기자고 우리 스타일을 바꿀 수는 없다.”
-본인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으로서 세운 목표가 있었을 거다. 대략 몇 퍼센트 정도에 이르렀다가 물러났다고 보나?
“한 75% 정도 왔다고 봤다. 그걸 90%까지 15~20% 정도 더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부상이라거나 하는 변수가 자꾸 생기니까 그걸 끌어올리지 못하고 끝난 거지. 솔직히 차기시즌에는 더 좋은 선수들을 영입할수 있고, 코치들하고도 나름대로 자신있었다. 우리가 첫 시즌은 좀 힘들어도 충분히 끌고 갈 수 있지 않겠나 봤다. 정작 차기 시즌에 가서 싸울 수 있는 전력을 리빌딩 하면서 차근차근 준비하자는 거였지. 궁극적으로 차기 시즌에 뛸 수 있는 선수 중심으로 지금부터 맞춰가자는, 뭐 이런 얘기다. 그래서 나이 어린 선수, 중간 선수, 나이 든 선수를 균형있게 짜야 차기시즌에 우리가 원하는 팀을 만들 수 있다고 봤다.”
-나름대로는 시계를 차기시즌에 맞춰 준비했다는 얘기인가?
“당장 결과 안 좋다고 우리 스타일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야 차기시즌 가서 우리가 원하는 경기 할 수 있다
후안 마타 안타깝지만 내 일도 복잡해서…
당장 마타는 어떻게 보나? 반 할 감독 아래서 부진한 경기를 보이고 있다.
“글쎄. 지금은 좀더 버텨야 하는 거 아닐까. 리그 초반에는 부진할수 있다고 본다.”
-마타의 부진 원인이 뭐라고 보나?
“나는 마타 자신도 플레이 스타일이나 의식에 좀 변화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 반 할 체제의 팀 자체의 컬러가 있는 거 아니냐. 플레이 스타일이 다른 팀보다도 훨씬 더 역동적이라고. 그런 리듬에 맞추려면 움직임 변화를 줘야지.”
-전화로라도 좀 조언해주시지.
“내 마음이 아파서. 요즘 내 일로도 머리가 복잡하다.”(웃음)
-당장 이제 뭐할 건가?
“더 열심히 연구해가지고 잘할게요.”
현장에 있어야 하는데 어느 팀이건 맡지 않으면 몸이 간지럽지 않나?
“에이 뭐, 올해 끝나면 내년엔 어찌 안 되겠나. 정 안 되면 미국이라도 가야지. 자꾸 오라고 난리인데.”
-혹시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이제 와서 누굴 탓하거나 원망할 생각 조금도 없다. 언론 피한 것도 그 때문이다. 누가 뭐라 하든 앞으로도 맨체스터 유나티이드 축구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힘 보탤 생각이다. 맨체스터 유나티이드 축구가 좀더 성숙하고 선진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