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여인은 실상과는 다르게 정반대의 평가를 받고있지
한 명은 희대의 악녀 또 다른 한 명 추앙받는 조선의 국모
잘못 알려진 두 왕비를 전격으로 비교해볼게
1. 사치수준
-민비: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며 당시 조선 국가 예산의 무려 1/6을 사용
- 세자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금강산 1만 2천봉의 봉우리마다 제사를 지냄
- 궁중에는 무당, 복술 맹인등 잡인들을 끌어들여 굿판과 치성이 끊일날이 없었음
- 영험한 점쟁이 이유인에게는 점 한번 봐주는데 복비로 비단 1백필과 돈 1만냥을 지급함
- 민씨 권력장악 10년도 안되어서 국고는 바닥나고 조정 대신들은 5년동안 녹을 받지못함은 물론
군대에 봉급도 주지못할 재정 -> 임오군란의 계기가 됨
민비 접견실에 깔아놓은 표범가죽 양탄자
(표범가죽 48장을 이어붙인거라는데 다른 강대국 군주들도 보고 혀를내두름..)
-마리앙투와네트: 프랑스 국가예산의 3%(왕실예산의 1/10) 사용(다른 왕비들에 비하면 오히려 적은수준)
2. 명 언
민비:내가 조선의 국모다~!
는 개뿔...
임오군란때 한번 도망을 쳐봐서 느낌알던 민비는
궁녀처럼 옷을 입고 궁녀들 사이에 끝까지 숨어있다가
일본 낭인에게 잡혀 파워참수당함
마리앙투와네트:빵이 없으면 케잌을 먹게하면 되잖아~!
- 프랑스 국민들이 먹을빵이 없어 굶주림에 고통받는 말을 듣고
마리앙투와네트가 했다고 알려짐 ->>>>사실무근
- 사실 저말은 장자크 루소의 "참회록"에 나오는 말임
3. 최 후
민비:권력의 소용돌이에 희생된 불쌍한 왕비
- 어차피 임오군란때 이미 뒤졌어야 할 목숨이었음
- 운이 좋아 살았다손 치더라도 백성들한테 맞아죽었을 것임
- 청나라를 끼어들여 청일전쟁을 일으키고 러시아에 붙는등
나라를 어지럽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민비임. 제무덤 스스로 판격
마리앙투와네트: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 재정의 파탄자
- 당시 식료품 가격 폭등, 거듭된 자연재해, 국가재정 파탄으로 프랑스 국민들의
불만이 커지며 자연적으로 마리앙트와네트에게 악의적인 여론이 많았음
- 사형 집행장에서 집행인의 발을 실수로 밟고 정중히 사과할 정도로 기품있는 여성이었음
4. 평 가
민비:조선의 국모로써 그녀가 죽자 백성들이 매우 슬퍼할정도로 지지를 받음
- 그당시 백성들이라면 민비를 다 싫어할 정도로 민심은 그녀에게서 돌아서 있었음
- 임오군란당시 충청도로 도망치던 민비는 주막에 들르게 되는데 고운옷을 입고있던 민비를 본
주모는 민비를 새색시로 오해하고 "죽일년의 왕비때문에 새색시가 시집도 못가네" 라고 말함
후일 청군이 들어와 임오군란이 진압된 후 민비는 그 주모를 찾아가 청웅시킴
- 1990년대 중반 '찬란한여명'에서 열강들의 이권다툼에 정면으로 도전한여걸로 묘사되면서 점차
이미지가 좋아지나 싶더니 명성황후란 제목의 뮤지컬, 드라마에서 감성팔이를
해나가다가 불꽃처럼 나비처럼에서 화룡정점이 됨
- 조선의 국모라 표현될 정도로 국민들을 사랑하며 기개가 있으며 죽는 순간까지 품위를
잃지않았던 이미지의 왕비로 인식되었음
마리앙투와네트: 무개념과 바게트된장녀의 대명사가 됨
“나는 방금 사형선고를 받았어요.(……) 당신의 오빠(루이 16세)와 마찬가지로 죄가 없기에
나는 그가 마지막에 보여준 확고부동함을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양심이 깨끗한 사람들이 그렇듯이 나는 평온합니다.
나로서 가장 유감스러운 일은 가엾은 아이들을 두고 가야 한다는 점입니다.
내가 오직 아이들을 위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알겁니다.”
- 시누이(남편 루이 16세의 동생)에게 보낸 이 편지에서
논개에 비견될 정도로 완벽히 거품 낀 상태로 포장된 민비와 달리 죽음 앞에 당당하고 끝까지
기품을 지킨것은 오히려 앙투와네트였음
- 다소 사치스러웠던 것은 사실이나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으며
다른 왕비들에 비하면 오히려 양호한 수준이었음
- 지혜롭고 훌륭한 왕비는 분명 아니었지만 기요틴에 목이 날아갈 정도의
잘못을 했던 왕비는 분명 아니었다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음
이렇듯 대중매체의 여파로 우리들에게 완전히 다른 인식을 심어준 두 여왕들이었음
한국사에서는 민비의 저런 면모를 조명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