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이곳에서는 행복합니다.”
핀란드 헬싱키 소재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박모(26·여)씨는 지난달 20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한국 생활에 대한 그리움과 고민이 교차하는 듯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박씨는 지난해 4월 어렵게 취업한 국내의 한 중견기업을 그만뒀다. 박씨는 “한국에서 ‘10년을 이렇게 일한다면
아늑한 집에서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자문해보고 ‘그렇다’는 대답을 할 수 없어 결국 회사를 그만뒀다”며
“월급도 많지 않았고, 집안 형편도 어려워 결혼은 꿈도 꿀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국내 사립 명문대학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하반기 취업 시즌에 100개가 넘는 기업에 지원했지만
단 한 곳도 합격하지 못했다. 그는 “당시 기업들이 유학이나 인턴 경험이 없는 점을 지적하면서 면접에서 무시하기 일쑤였다”고 회상했다.
박씨는 2012년 상반기 중국에 있는 한 기업에 취업했지만 향수병에 시달린 나머지 국내 기업의 문을 수도 없이 두드린 끝에
2013년 1월 국내 한 중견기업에 입사했다.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박씨의 연봉은 세전 3100만원으로 한 달에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210만원.
그마저도 학자금을 갚고 월세에 관리비를 내면 박씨의 손에 남는 건 50만원이 고작이었다.
정해진 근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였지만 야근이 잦았고, 자정까지 일을 해도 야근수당을 받지 못했다.
박씨가 결정적으로 퇴사를 결심한 계기는 2013년 말 출산휴가를 1년 쓰고 돌아온 한 선배의 퇴직이었다.
통상 3개월씩 쓰는 출산 휴가를 육아휴직까지 얹어서 1년으로 연장한 그 선배는 회사로 돌아온 뒤 왕따를 당했다.
아무도 그녀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일도 주지 않았다. 박씨는
“회사의 여자 동료가 선배에게 더 싸늘하게 대하는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한 직장의 동료이자 한 아이의 엄마로 살아가기 힘들겠다고 판단한 박씨는 지난해 4월 회사를 그만뒀다.
불확실한 미래에 불안했던 그는 ‘좀 더 넓은 세계를 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여행을 떠났다.
핀란드를 방문해 그곳의 삶을 엿본 뒤 정착을 결심했다.
핀란드 노동자들은 야근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임금이 높았다. 저축도 더 많이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헬싱키에 머물며 5개월 동안 입사지원서를 낸 뒤 한 대기업의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게 된 그는
한국에서처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행복감에 충만해 있었다.
열악한 국내 취업 환경에 실망해 핀란드로 이주한 박모(26·여)씨가 지난달 20일 수도 헬싱키에서 자신이 근무하는 건물을 바라보고 있다. 신원 공개를 원치 않는 박씨 의사에 따라 뒷모습을 촬영했다.
핀란드에서는 세금을 많이 내고 물가가 비싸기는 하지만 계약직과 정규직의 임금 차이가 거의 없어 저축금액도 몇 배로 늘었다.
출근 시간은 오전 7∼8시로 한국에서보다 빨라졌지만 오후 3∼4시 사이에 퇴근할 수 있다.
박씨는 “어학원에 등록해 퇴근 후 핀란드어를 공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핀란드의 유연한 근무환경에서 큰 만족감을 느낀다고 설명했다.
한 번은 박씨가 감기 몸살이 들어 아픈 몸을 이끌고 회사에 갔을 때 그의 상사는 “왜 출근했느냐”며
“사원들에게 전염될 수 있으니 푹 쉬고 완전히 낫기 전까지는 출근하지 말라”고 말했다.
박씨는 “아프면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핀란드에는 생리휴가라는 개념 자체가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여성이 가정과 직장 생활을 병행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잘 돼 있어 출산 후에도 언제든 일자리로 돌아갈 수 있어 좋다”며
“계약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다른 계획이 생기지 않는다면 계속 핀란드에 살 것”이라고 말했다.
http://www.segye.com/content/html/2015/02/11/20150211004604.html